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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26 장군(將軍)의 고통
  2. 2009.04.15 그래요, 외롭습니다

0월 0일- 비가 내렸다

  큰 칼의 무게가 버겁다. 비가 서울 땅을 적셨다. 수레는 멈춤 없이 달렸다. 세종로 8차선과 광화문 일대는 비와 차들과 사람들로 뒤덮였다. 멀리 숭례문의 가림막은 보기에 답답했다. 웬 노인이 화에 받쳐 숭례문을 태운 날, 나는 오도 가도 못했다. 그의 소행을 풍문 결에 들었다. 재개발 보상비를 정확히 받지 못해 화가 나 저지른 일이라고 들었다. 숭례문이 타기 몇 해 전에는 창경궁도 태우려 했다는 말도 더불어 들었다. 그의 화는 내가 쥔 칼의 무게에 더해진 것 같았다. 부담스럽다. 종묘와 사직이여.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 다는, 혹은 건물을 높이 올린다는 이 시절의 일이 내겐 낯설다. 내겐 12척의 배가 있었다. 명랑 앞 바다에서 나는 죽음으로써 살았고 살아서 죽었다. 건물을 짓고 허문다는 이 시절의 일이 나는 낯설고 하찮고 어렵다. 생명이 그 일에 개입되어 스러져버렸다는 말고 풍문 결에 왔다. 불에 6명이 타죽었다는 참담한 소식이었다. 왜적이 쳐들어온 일도 아니었다. 내 나라에서 빚어진 촌극이었다. 지금 이 땅엔 12척이 넘는 배들과 군병이 있다. 그러나 주린 자들과 밀려난 자들의 곡소리가 들린다. 난세와 치세의 경계와 구분이 문란해진 것일까. 큰 칼은 말이 없었다.

  작년 여름. 나는 나를 둘러싼 경찰과 사람들의 대치 복판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초를 들었다. 초가 모이니 봉화 같았다. 경찰은 법치를 지킨다고 했고 사람들은 민주와 자유를 외치는 것 같았다. 이 둘 사이에서의 내 고통과 존재에 대하여 나는 시름했다. 나는 누구의 편도 될 수 없었다. 누구 말이 옳은 지에 관해 내 긴 칼은 내게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대치는 연일 이어졌다. 나는 칼을 놓고 그 대치를 글로 적고 싶었다. 나는 여름날의 더위와 대치에 앓았다.

  치세와 난세의 구분은 문란해졌다. 내가 알던 병법과 병사들을 조련하는 일들이 전부 무위인 시대, 왜적의 외침도 물러간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신음하니 이 어찌된 일인가. 다스리는 자들의 말은 적었고 갈수록 말랐다.

 

0월 0일- 비가 내렸다

  큰 칼이 물에 젖어 들기가 성가셨다. 나는 서서 광장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의 표정은 수심이 짙었다.

  “12척의 배로 지킨 이 땅의 사람들아, 수심이 깊구나. 어찌된 일이냐. 나는 아프다. 약탈이 극심하고, 살생의 자행이 빈번했던 난세 속 백성들의 표정과 너희들의 표정이 다르지 않다. 무엇이 족하지 않은 게냐. 무엇이 노여운 게냐. 나는 시름한다.”

바다는 멀었고, 내겐 큰 칼 하나뿐이었다.

 

0월 0일-흐리다

  신(臣) 신이 삼가 아룁니다. 신이 세종로 복판에 서 사람들을 굽어보니 사람들의 시름과 부심이 극심해 몸 두기가 민망하옵니다. 간악한 도적을 사직에서 몰아낸 옛일의 기억은 멀고 아득하옵니다. 신의 짧은 생각으로는 쥐 같은 외적들만 쳐내면 모든 일은 순조로울 줄 알았사오나 사람들의 화와 부정(不靜)은 잦아들지 않사옵니다. 먼저 가신 밝은 이들이여, 사람들의 시름을 가져가소서. 신 신은 큰 칼을 쥐고 망궐례를 올리나이다.

 

0월 0일-흐리고 바람이 분다

  큰 칼을 쥐고 땅 아래를 종일 바라봤다. 사람 여럿이 모여 큰 소리로 뭐라 떠들었다. 멀어서 또렷이 들리지 않았다. 이런 일은 지금, 이곳에서 잦다. 그 곁을 어린 경찰들이 둘러쌌다. 말하려는 자와 말을 막으려는 자의 대치, 대치 끝에 빚어지는 폭력에 나는 속으로 울었다.

‘약한 자들아, 아프지 마라’ 나는 속으로 빈다.

  풍문은 좋지 않았다. 들리는 바엔 ‘분열과 부정, 부패’같은 사특한 낱말이 많이 실려 있다. 나라의 말기적 징후를 드러낸 말이었다. 듣기 민망한 말이었다. 이 말들의 주인은 주로 다스리는 이들이었는데, 소행이 몰염치하고 탐욕스럽다. 자리를 청하거나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재물을 주고받았다니 가소로운 일이다. 부정한 일에 귀를 틀어막을 수 없으니 곤욕이 이만저만 아니다.

 

0월 0일-맑았다

  밤이슬에 몸이 젖어 오전에 눅진했다. 물가가 그립다. 진도와 통영과 한산의 바다가 그리웠다. 홀로 세종로에서 서서 물가를 그리워하는 일이 잦다. 뭇사람들의 시름과 수심, 번민을 내 어깨에 걸머쥐고 통영과 진도, 한산 앞바다에 모두 쏟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간절하다.

 

0일 0일-맑다 흐렸다

  버려진 섬에 꽃은 피었을까. 권태가 밀려와 견디기 힘들다.

  찢겨진 반도의 두 나라 사이의 이념과 체제는 서로가 서로를 견디기 어려워한다. 현대의 첨단병기를 보유했느니 마느니 하는 북쪽은 사방으로 외로운 지경이다. 남쪽은 그러한 북쪽을 못 미더워한다. 믿음은 파탄나고 대국(大國)들은 반도를 주시한다. 병기와 군졸의 수가 유일한 기댈 곳. 각축과 염탐과 획책은 난중에도 이 지경은 아니었다. 고요한 파란이 연일 이어졌다.

 

0월 0일

  신 신이 적습니다. 다스림이 부정되고 신의는 무참하며 전화(錢貨)만이 우뚝한 이 땅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도처에서 끊이질 않사옵니다. 큰 칼 하나 손에 쥔 제 몸뚱이는 오늘도 그들을 다만 바라볼 뿐입니다.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고통과 신음과 번민의 백성들과 이익만 좇아 취하는 치도배·강상배들이 공존하는 이 땅 수도에서 신의 거처는 가려지질 않나이다. 마음 같아선 큰 칼 한 번 휘둘러 세상 바른 이치를 사려 펴고 싶으나 되질 않나이다. 제 거처와 더불어 제 병장기도 가려지질 않나이다.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앞서간 밝은 이들이여, 이 땅의 삶들을 가련히 여기소서. 눈물을, 고통을, 번민을 쓰다듬어 주소서. 미련한 저는 사라지지 못해 다만 이리 서 있으니, 서서 가려지지 않는 이들의 아픔과 슬픔을 바라봅니다. 저의 통고(痛苦)를 말해 무엇하나이까. 망궐례를 올리나이다.

 

0월 0일-흐림

  침묵과 부동은 나의 일이다. 나는 그저 바라본다.

  ‘너희들이 나를 세워놓은 세종로 복판은 번잡과 신음의 복판이 아니냐. 큰 칼은 갈수록 무거워 버겁다.’

  다시, 땀이 흐른다. 식은땀이 몸에서 배어나온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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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요, 외롭습니다. 외로워서 사람들에게 기대를 뿌리고 바람을 뿌리고 원망을-바람과 원망은 한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뿌립니다. 오래 전부터였을 겁니다. 종시 외로워서, 외로움을 타서 혼자 있을 땐 쩔쩔 매다가 함께 있을 땐 그 외로움을 숨기려-외로움이 구차한 혹은 부끄러운 감정이라도 되는 양-쩔쩔 맵니다. 그러다 술에 취하기라도 하면 봇물이 터지는 거지요. 흘러넘칩니다. 다음날 깨서 돌아본 내 모습이란 끔찍하게도 부끄러워 또 홀로 침전해버리고. 이럴 때는 심연이란 말을 많이 쓰더군요. 심연이란 말을 곳곳에서 자주 쓰곤 하는 데 그 말의 깊이와는 별개로 너무 닳아버린 느낌이랄까요. 내 느낌이 적확하다면 한 세기도 채 가질 않아 그 낱말은 마멸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

 

  술에 취해 시름하다 외로워하다 단재 신채호 선배-선배란 말의 친밀함이란 시공을 뛰어넘습니다. 애써 청하지 않고 이렇게 적어버리렵니다-가 적은 ‘我와 非我의 투쟁’이란 평론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그 글을 숙독하지는 않았습니다. 스치듯 지나간 글이었지요. 그 제목 속에 묻어있는-글의 내용과는 별개로-외로움의 모습과 단재가 처했던 당대의 난망함을 떠올렸습니다. 나와 내가 아닌 것의 싸움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식민지 약소국의 혁명가의 외로움의 깊이와 표정은 어떠했을 지요.

 

  세상이 점차 포악해지고 약한 사람들을 쥐고 흔들 때마다, 저는 식민시대의 선배들을 떠올립니다. -그럴 때면 제 외로움은 제가 모를 어느 극지에까지 이르러 제어가 안 되는 궤도에서 혼자 분탕합니다- 그들이 대당하거나 길항했던 세계는, 그리고 그 세계를 극복하고 이루고자 했던 세계는, 그리고 그 세계의 모습과 어느 정도 부합한 내가 사는 이 세계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갈망으로 이룩한 오늘의 이 땅은 왠지 모를 외로움들이 넘실대는 넝마의 땅 같습니다. 서로 그 구차하다고 믿는 외로움들을 숨기려고 증오하고 모욕하고 싸우고 분노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 이 지나친 페시미즘을 용서하소서. 사랑과 연대, 배려, 희망 같은 긍정적 가치를 논외로 두자는 뜻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외로움의 감정은 매번 절망이거나 분노이거나 화였습니다. 아마도 성마르고 깎아지른 듯한 제 성미 탓 이겠거니 합니다. 그래요, 그것일 겁니다. 외로움을 말하려다 글이 이 지경까지 와버렸습니다. 어지르고 더럽혀놓고 늘어놓는 제 버릇은 글에서도 나타납니다.

 

  아무튼 말하려던 외로움을 가감없이 옮겨적기엔 이 글은 너무도 하찮군요. 머릿속 생각이나 인간의 삶을 그대로-한 티끌, 한 점도 빼지 않고 말입니다-옮겨적을 수 있는 기계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 때에 이르면 문학은 죽거나 박제품으로 남겨져 있을 것 같군요.

 

  그래요, 외롭습니다. 고독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밀려옵니다. 내가 인간임을 버겁게 알리는 이 공복감과, 창과 지붕을 때리는 저 빗방울에서도 외로움을 느낍니다. ‘삶은 본시 외로움 아니겠습니까.’ 이런 위로도 별무소용이군요. 결국 외로움은 가셔지지 않았습니다. 가셔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요. 더운밥을 먹으면 외로움에 조금은 위안이 될는지요. 그도 모를 일입니다.

 

  어제 마신 술에서 오는 숙취로 고생합니다. 외롭습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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