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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IN <시사IN>'에 해당되는 글 28건

  1. 2009.01.14 써야겠다
  2. 2009.01.12 敵이 늘다 2

  '사실'의 단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전화통을 붙잡고 이 질문 저 물음을 했다. 취재원에게서 돌아오는 답은 대체로 성실한 답이었다. 받아 적으며 만족한 답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은 모일 대로 모였다. 이제, 쌓아올릴 차례다.
  나는 순열이나 배열에 재능이 없는 학생이었다. 조합이나 덧셈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때는, 그게 필요없을 것 같았다. 오판이었다. 수학을 잘 하는 것이 글쓰는 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안다. 그저, 쓰자니 이 점 저 점 채인다. '아, 그 때 그걸 좀 열심히 할 걸.'하는 마음이 생긴다. 글을 앞에 두고 소회를 적자니 적잖이 부끄럽고, 부질없는 일 같다.
  지금, 내가 모은 팩트는 하나의 글을 적기에 족해 보인다. 내 눈에는 차고 넘쳐 보인다. 선배들 눈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써야겠다. 71호에는 내 기사를 적어 올린다고 은남 선배에게 호언했다. 되려나.
  은남 선배는,
  "써 봐라." 했다. 쓰고 나면 보겠다는 말이었다. "쓰지 마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다. 보겠다는 말이다.
  기자는 쓰고, 쓴 것을 딛고 또 쓰고, 캐서 쓰고, 맞춰서 쓰고, 잘라서 쓰고, 말한 것을 토대로 쓰고, 말하지 않을 것을 유추해 쓰고, 결국 써야 마땅한 직업이다.
  써야겠다. 잘 써야겠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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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파업할 때 말야. 권력은 '삼성'이었잖아. 이제 정치권력이 휘두르는 시대는 갔다고. 근데 이게 웬일이야. 다시 정치권력이야, 햐~"
  웬 술자리에서 차형석 선배는 말했다. 이 정부를 두고 한 말이었다.

  "야, 지금 같으믄 창간 못했지. 기자들이 파업을? 사장의 편집권 전횡이 마음에 안 들고 옳지 않다고 파업을? 1년 전 일이었으니 망정이지, 이거 다들 구속감이야."
  문정우 국장은 농반진반이었다. <시사저널>사태가 요즘같은 시국에 터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말이었다.
  "구속 되셨으면 제가 사식이라도..."
  나는 그의 말을 받았다. 웃음기를 조금 묻혀놓은 답이었다. 돌아오는 문정우 국장의 말.
  "야, 사식은 무슨. 너도 끌려갔을 거다."
  문정우 국장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웃지 못했다.

  <시사저널>파업 와중에 남문희 국장에게 물었다.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을(혼돈, 혼란, 방황, 고민 등이 모두 뒤스러지고 난맥이라는 말을, 20대에게 세상이 왜 그리 가혹하냐는 둥 하는 말이 뒤섞인 물음이 취중이라 저리 나왔을 것이다) 그에게 했다.
  "적(敵)이 모호해져서 일 거다. 우리 세대는 '적'이 뚜렷했다. 독재라는 적이었다. 우리는 '적의 적'이면 됐다. 지향, 꿈, 열망을 모두 '적의 적'이 되는데 쏟으면 됐다. 지금은 아니다. 일견, 적이 사라진 시대다. 적의 구체적 실체는 희미하다. 잘 보이지 않는다.
  국제투기자본이 적인가? 그럴 수 있다. '삼성'을 비롯한 자본권력이 적인가? 그럴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적인가?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다' 이다. 달리 말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다. 적을 잘 세워라. 그럼 혼란과 방황의 20대가 곧게 설 수도 있다."
  남문희 국장은 내게 일렀다. 모든 것 이 불확실할 시절에 적은 도처에 있고, 적과 지향이 한 몸일 수도 있다. 당시엔 그의 말이 몽롱하게 왔다(취중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의원이 말한 '부드러운 권력'과 그의 말이 맥을 같이 한다고 나름의 논리를 세워 몇 날을 헤집어 보기도 했다.
  결국, 내 적은 '자본'이 됐다. 하지만, 자본에 결합한 내 '욕망'은 '자본'앞의 나를 간간이 무장해제시켜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만들기도 했다. 긴장하고 고민하며,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 왔다. 나의 적은 내 생활과 욕망과 붙어 먹으려는 '자본권력'이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적이 늘었다. 선배들이 내쳤다고 믿은 정치(독재)권력이 돌아왔다. 정치권력은 실체가 있고, 가혹했으며, 염치없고 그악했다.
  구체적 실체가 생긴 이 적 앞에서 나는 기뻐해야만 하는 지가 한동안 고민인 날들이 있었다. '적의 적'으로 살면 곧게 설 수 있는 남문희 국장의 말에 머리 싸매던 날들을 벗어남을 기꺼워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확실해 지긴 했다. 내 보배운 바에 입각해 저들이 염치없고 연민없는 이들이라는 게 확실했다.
  나는 요즘 내 확실확 적의 '적됨'이 내게 행운인지가 의문이다. 오히려, 불확실한 적의 시절 속에서 허우적대었던 게 나았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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