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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해피리포터 못 할 것 같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진작에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할 지 안 할 지를 두고 말을 뭉개다 이 지경까지 오게 돼 버렸습니다. 발대식 이후에 활동이 조금씩 진척되고 나서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합니다. 어쩌면 더 진행되고, 일 한가운데에서 있을 때보단 지금이 나은 것 같습니다. '안 한다'란 말의 적기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제 생각엔 적기인 것 같습니다. 연구원님 얼굴 보면 말 못할까봐 메일로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우선, '왜 내가 이 일을 해야하나.'란 물음엔 도저히 답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어도 재밌지가 않았습니다. 억지로 글을 계속해 읽어나갔고 취재나갔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억지로 그 일과 취재를 하기엔 숙고 끝에 내린 휴학의 날들이 아깝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섞이는 일도 제겐 버겁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내릴 평가와 담화를 기대하는 일도 귀찮고 힘듭니다. 누차 거론되는 제 외모에 관한 말들을 듣는 것도 내색은 안 했지만 지겹고 짜증스런 일입니다. 그 일을 또 다시 겪어나가고 조율해 나가기가 덜컥 무서워졌습니다.

  사실 연구원님에게서 '무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연구원님과의 말과 회의 가운데에서 불쑥 나오는 저에 대한 무시의 말들이 조금씩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연구원님이 저를 편케 생각하셔서 은연중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연구원님께 버릇없이 굴거나 건방지게 대한 것 알고 있습니다. 이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바를 그간 느껴왔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어그러짐이 부담이 돼왔습니다.

  연구원님은 제게 '꼬였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그러하다면 저 역시 그 점을 긍정하겠습니다. 그래서, 담대해져야겠단 생각도 합니다. 해피리포터를 하면서 보단 혼자 해보고 싶습니다. 앞으론 저를 혼자 다져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발대식 때 찍은 사진들과 사람들의 자기소개글을 봤습니다. 4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해피리포터'가 되었다는 기쁨으로 가득찬 사진과 글이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지난날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처음, 그 즐거움의 기억만으로 계속해 활동을 연장했습니다. 그러나 1기로 족했습니다. 2기, 3기까지는 지나쳤고 지나칩니다. 그 때 그쳤다면 이 쓸모 없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됐을지 모릅니다.

  저는 벅차오른 40여명의 3기 해피리포터들과 함께하기 어렵습니다. 함께 '뚜벅뚜벅' 걸어나가자고 연구원님은 말했지만 그 마저도 힘들 것 같습니다. 나 혼자의 일도 감당 안 되는 요즘입니다. 요즘의 저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동안엔 생각으로만 그쳤지만 이제는 행동. 그리고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물론, 자치운영위원회의 조그만 활동들이 저를 속박하거나 옥죄고 있었다란 말은 아닙니다. 작은 여지없이 홀가분해지고자 하려는 것입니다.

  '못 하겠고, 안 하겠다.'를 2기 연장 즈음에 말했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말하게 되는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된 건 제작소의 사람이 좋았고 사람이 좋아서 늘 yes만 한 저의 탓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싫은 것은 싫다고 내키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다고 할 겁니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그 말이 어려워질 것이라 저는 젊어서 분명하게 말해버릇하려고 합니다.

  얼굴을 뵙고 말씀 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말'로 그 말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멀리서 '해피리포터'와 연구원님의 활동을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저는 저대로 어디에선가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겁니다. 이 바닥이 좁아 언제고 어디서고 마주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연구원님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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