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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희는 말대꾸를 잘한다. 특히 나한테 잘하는 것 같다. 한번은 내가 국문과 선배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가끔은 성질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재밌어 계속 성질을 돋우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은 웃어버린다.
하루는 영어공부를 하는 선희에게 물었다.
"영어 잘하냐?"
 "아니요, 못하는 데요."(비음 섞인 그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럼 국어는 잘하냐?" "아니요, 국어도 못하는 데요."
 "그럼 넌 뭘 잘하냐?"
"선배, 그런 건 왜 물어요?"
"그냥, 심심해서."
"선배(--^)!!"
"넌 잘 하는 게 따로 있잖아."
"뭔데요, 그게?"
"너는 말대꾸를 잘해." 선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긍정의 웃음 같아 보였다. 저도 지가 말대꾸를 잘 하는 거 아나보다.

 나는 말대꾸를 잘하는 선희가 유독 예뻐보인다. 가끔 열 올리고 씩씩대며 말대꾸하고, 개기는 거 보면 딱 나 같기도 하다. 대학생의 모습같다. 요즘 대학생들, 말대꾸를 잘 못한다. 누가 뭐라 하면 쫄거나 얼어서 말을 더듬거나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고 백남준 선생은 민주주의를 한마디로 정의내렸다. "민주주의는 말대꾸"란다. 처음 그 말을 봤을 때 살짝 어이없었다.

내가 믿고 있던 민주주의의 그 수많은 규칙과 방법, 절차가 완전 붕괴되고 전복되는 말이었으니. 그러나 거듭 생각한 후 납득했다. 민주주의는 말대꾸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권력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항하거나 반발하면서 지금의 민주주의가 생긴 것이다. 말대꾸는 기본이자 전부다. 선희 녀석의 말대꾸 속에는 그 위대한 원리가 숨어있는 것이다(놀랍게도).

우리 학교가 몇년 새 내건 기치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펜보다 강하다'란다. 동의할 순 없지만 상상력의 대단함엔 공감한다. 상상력은 모든 비판에서 시작된다. 비판의식이 없다면 상상력이 이루어질 수 없다. 상상력의 구체적 행동인 발명도 기존의 물건이나 도구가 인간의 몸에 편하지 않다는 비판에서 시작된다. 문제의식 속에 상상력이 담겨있는 것이다. 현실의 안주하면 발명과 상상력은 이루어질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학생은 간단하다. "대학생은 대드는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선 70~80년대 운동을 하던 선배들이 그랬다. 68년 전 세계의 대학생들은 모든 전쟁에 저항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계의 꼴을 보기 싫었다는 이유였다. 말도 안되는 전쟁에 동원하는 국가권력의 폭압에 견디기 힘들어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선배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세계의 전쟁은 끝나고 저항했던 대학생들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도 선배들의 비판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누리고 있다.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을 읽어도 누가 뭐라 안하고 밤 늦도록 술판을 벌여도 뭐라하는 사람 아무도(부모님 빼고)없잖은가.

 내가 생각하는 기자도 간단하다. "기자는 개기자는 것!!" 물론 지금 많은 기자들은 순한 양이 됐다. 특히나 주류 매체 기자들의 순응 모습은 역겹기가 입에 담기도 싫은 정도다.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 권력앞에서 그들은 꼬리를 흔들고 있다. 하긴 꼭 그들만 탓할 수는 없다. '김승연, 정몽구'등 재벌 총수에 말도 안되는 처벌을 내린 사법부도 자본 권력 앞에 순응하기는 매 한가지다. 정부는 범 국가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조성해 사람들의 생활 터전을 기업에 좋게 맞추고 있다. 기자만 탓할 순 없다.

 대학생은 자유로워야 한다. 대학생 때는 어디에 얽매여서도 안되고 어디에 순응해서도 안된다. 그것이 토익이든, 토플이든, 행정학이든, 9급 시험대비 국사, 국어책이든, 학점이든, 등록금이든...(사랑 빼고)근데 사회의 요구는 대학생들을 옭아매고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등록금은 학생들을 알바 전선으로 내몰게 하고, 졸업 후 바늘 구멍 같은(5%에 속하는)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사회는 학점 관리와 토익,토플 관리 게다가 없는 살림에 어학연수까지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대학 서열주의는 내 후배들을 주눅들게 하고 있다(그 모습은 볼 때마다 안쓰럽고 짜증난다).

 가끔 생각한다. 사회가 이렇게 대학생들을(대학생 뿐 아니라) 족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 각 세대나 계층 모두 이런 종속 속에서 살고 있다(거론하면 끝도 없어 삼간다).

 대학생 기자는 다른 대학생들에 비해 더 자유로워야 옳다. 그들의 기사 속 비판의 행간에 자유의 묵을 곳을 만들어 둬야 하고, 대학사회의 부조리와 대학 밖 사회의 불합리에 분노해야 하는 자유의 공간을 제 스스로 마련해둬야 한다. 강자와 권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언제나 제 속으로 육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의 권익을 위함이고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끔이다. 말대꾸는 그런 육화의 표출과 대응방식이다. 그러나 내 후배들을 보면, 속으로 참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내 혼자만의 생각인가.

 분노해라, 말대꾸하고 세상이 틀렸다고 지적해 말해라. 그것을 글로 옮겨 널리 알려라. 지금 이 힘든 시기는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세상의 잘못이다.

 선희의 말대꾸는 나와 그 녀석이라는 사적 관계 안에서 농담의 형태로만 이루어지지만 그 모습 조차로도 기껍다. 선배에게 대드는 것은 권위와 권력을 거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때도 있다. 세상은 변하고 좋아졌지만 더 변하고 더 좋아져야 한다.

마치며『88만원 세대』(우석훈, 박권일 공저. 레디앙.2007)를 권한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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