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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5일

일기 2007. 10. 16. 11:53

 아침에 부는 바람은 찼다. 수영장 더운 물에 몸을 녹였다. 발을 오래차니 허벅지와 종아리가 당겼다. 어깨가 뭉쳐 접영이 되질 않았다.

 불안하고 불운한 시대였다. 사람들은 위태로웠고 백척간두에 서있는 듯했다.  인간이 지당하게 받아야 할 갖은 사회적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시대였다. 일을 하다 영문동 모르게 일을 잃은 사람과 내세에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년의 말은 비참하지만 요즘의 말이었다.

 『부서진 미래』라는 책은 사람들의 말을 다룬 책이다. 그 말은 신산했고 처절했고 시급한 말이었다. 책 속의 글은 사람들의 말을 옮겨 적은 것이었다. 글은 말을 옮겨 적어 부박했지만 읽는 이를 망연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당면한 사람들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말이었다. '나'의 말은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다 머리가 먹먹해진게 한 두번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머리가 부서지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었다. 국가가 사람들을 이렇게 하찮게 대하고 여겨도 되는 것인가 생각했다. 로크나 맹자의 혁명을 가져다 적용할 계제가 아니었고, 줄창 욕을 퍼부어도 시원찮았다. 이것이 우리들의 '오지 않음(未來)'인가. 나는 읽으며 오지 책 속의 말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책 속의 말은 온 말이었다.

 나는 신자유주의를 누가 발명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말의 외적 찬란함을 등지고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인간소외를 목격한 적이 있는지 그 발명가에게 묻고 싶다. 죽은 자라면 관을 파내 뼈를 붙잡고 묻고 싶다.

 사람이 홀대되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신자유'인가. 짧은 머리에서 '자유'의 말만이 오갔다. 신(新)은 새로움을 뜻하는 접두사일 터. 그렇다면 새로운 자유는 내가 아는 자유와 대립되는 신조어일 것이었다. 인간이 천하게 여겨지고,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착취하고, 인간이 돈 앞에 무력한 것이 신자유가 뜻하는 바일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문득, 글이라는 것을 쓴다고 하는 나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 글은 힘이 없었고 울림이 없었으며 현실사회의 치열한 문제를 담아내는 폭도 없었다. 사람의 말이 글에 앞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글 속 되바라진 수사와 낱말들이 전부 허공에 뜬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땅도 딛지 않았으며 허공의 낱말을 섬기느라 바빴다.

 나는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긍정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긍정을 최근 들어 다시 생각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작금의 현실상황은 퇴보 내지는 과도기인가.

 책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말은 어려웠다. 머리가 짧고 배움이 부족함을 책을 읽으며 절실히 느꼈다. 이제 땅을 딛고, 딛은 땅 위에서 사람들의 말을 섬길 것이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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