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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메일을 펴보는데 '네이버'에서 메일이 와 있다. 내가 하는 네이버 블로그의 포스트 하나가 게재금치 요청을 당했다는 메일이었다. 어리둥절하다 메일을 찬찬히 읽었다. 작년 7월 26일에 포스팅 된 '시사저널 결별 기자회견장에서'란 제목을 단 포스트였다. 큰 문제가 되는 글도 아니었다. 단순히 시사저널의 전 기자들이 청양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람들에게 회사와의 결별을 알리던 날, 그 표정과 말을 담은 글이었다.

  난감해서 요청자를 보니 <시사저널>이란 아련한 기억의 잡지였다. '시사'까지만 보고 <시사IN>이나 <시사IN>의 기자들로만 알았다. '내가 너무 기자들의 푹 젖어있는 모습을 썼나. 하긴 기자들 자존심이란 게 있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시사IN>이 아니라 <시사저널>이란다. 네이버 측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게재 금치 요청서를 썼다.

  '귀하의 포스트가 게재 금치 요청자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사오니...' 대강 이런 요지의 말이었다. 명예? <시사저널>의 명예? '네이버 지식in'에 묻고 싶었다.

"귀측(네이버)이 '명예'란 낱말을 쓴 것은 <시사저널>이란 잡지사를 염두해 두고 쓴 것 같은데 과연 제가 아는 명예와 귀측이 아는 명예란 말이 같은 뜻인가요? 내공 겁니다."라고.

  사장이 잡지의 인쇄과정에서 무도하게 기사를 들어내 기자들이 1년 간 모든 것을 걸고 파업을 했다. 월급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근무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편집권 독립'. <시사IN>의 기자들이 전 직장에서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이 하나의 가치를 두고 곡기를 끊었던 기자들도 있었다. 결국 지켜지지 않았던 '편집권 독립'이란 명분으로 지금의 <시사IN>이 생긴 것 아닌가. <시사저널>의 명예는 그 때 사라진 것으로 아는데 어디서 사왔나보다. 내가 알기론 그 회사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줄 아는 '삼성'이란 회사의 압력으로 명예를 스스로 없앴다. 기자협회의 회원사 제명이 그 증거 가운데 하나다. 명예가 없어진 줄 알았는데 도로 생겼다니 삼성 측에 돈 주고 다시 사왔나보다. 아님 네이버가 구라를 치는 것일 테다.

  <시사저널>사태의 본질은 '편집권의 위기'다. 풀어 말하자면 사장을 비롯한 여타의 외압으로 인해 기자가 본인 마음대로 기사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 <시사저널>의 사장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쇄과정 중에 국장이나 담당기자와 상의없이 기사를 삭제했다. '편집권 침해'의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 덕에 <시사저널>이 가꿔왔던 '독립언론'의 전통과 명예가 깨어진 것인데. 요즘 돈으로 못 사는 것 없다더니 돈 주고 명예를 도로 사들였나보다.

  사장 차원에서 기자의 글을 삭제하더니 이제는 전사적 선에서 선량한 블로거의 글을 게재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도 직접 요청한 것이 아니라 대리인 '네이버'를 통해서 요청을 했다. 곰곰히 메일을 읽다보니 떠오르는 게 있다. 일종의 기시감이다. 식을 세워 대입하면 딱 맞아 떨어지는 그림이다.

  <시사저널>을 당시 '삼성'에 대입하고 '네이버'를 당시 <시사저널>(혹은 당시 사장 금 모씨)라고 대입하면 된다. '<시사저널>(삼성)의 요청을 받아 '네이버'(<시사저널>혹은 사장 금 모씨)가 게재중지 요청(기사 삭제)을 한다. 딱 떨어졌다. <시사저널> 편집권 침해의 전통이 기자와 지면으로도 모자라 이제 개인 블로거와 포스트에까지 미친다.

  이렇게 돼버리면 난 영락없는 당시의 기자들인데 어떻게 그들처럼 파업을 해야하나. <시사IN>창간 1주년에 맞춰 받은 그들의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 하나.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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