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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름을 누렸다. 남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남들이 휴학한 이유를 물을 때 그렇게 말했다. 세상이 살벌하고 황망해 나는 외려 게으름을 부리고 싶었다. 그래도 머리는 바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책들을 읽었다. 머리가 게을러지는 건 내 스스로가 못 견딜 일이었다. 세상이 살벌하고 황망할 수록 머리가 부지런해져야 했다.

  체중이 불었다. 많이 먹고 많이 싼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그치지 않는다. 몸이 게을러지니 그에 반비례해 신진대사가 느나보다. 아니면 머리 굴릴 때 드는 열량이 꽤나 많은가보다. 많이 먹고 많이 싼다. 걸음을 적게 걷고 느리게 생각하려고 한다. 8월 중순부터 그랬다. 몸에 많이 익었고 머리가 많이 적응했다.

  9월엔 다시 좀 몸을 부려야겠다. 느리게 움직이더라도 알차게 움직여야겠다. 많이 움추리고 있었다. 정권의 행태를 지켜만 봤다. 촛불집회에서의 물리적 진압은 익히 보았다. 그들이 내 조국의 구체적 실체라고 확언하기 싫었다. 그러나 겪은 일이었고 당한 일이었다. 한동안 집회장에 발을 끊었다. 부당한 그들의 작태에 대항할 내 힘이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져서였다. 주저앉았다 졸다 한 날, 차도에서 전경들은 시민들을 개몰듯이 몰아 연행했다.

  잠시 쉰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새긴 말이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내가 부족해서 활자에 마냥 기대고 싶었다. 8월 중순부터 그랬다. 주먹 휘두르는 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님에 길게 보고 나를 깎고 벼리고 싶었다. 주먹 휘두르다 말로 댓거리를 하고 글로 맞서며 대안으로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 시민들은 여전히 정권의 폭압 아래 있다. 스님들은 차별적인 대우에 목탁대신 주먹을 쥐었다. 9월엔 날래게 움직여야 겠다. 나는 그래야겠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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