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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것.

지역감정에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민주당놈들한테도

도움받은것도 아니고 오로지 개혁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국민들에게 갚으면 될 것니다.

빛은 꼭 갚아야 하니까요..

아~~기분 좋다. 한잔 더 할랍니다

노무현 대통령 만세 "

아마 지난 대선이었나보다. 한 선배의 투표대로 되서 선배는 기뻤나보다. "술발로 씁니다"란 글이었다.그 선배가 이 글을 쓸 무렵 나는 아마 방에서 대선 개표방송을 보며 이 선배처럼 그 후보자의 당선을 기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주무셨고 그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를 찍으셨다. 어머니는 기권하셨다. 일을 나가야 하느라 투표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투표를 할 수 없는 나이었다.

나도 그들과 더불어 기뻤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그 시절 나는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가 좋았다. 그의 걸음걸이에 묻어나는 당당함이 좋았고 그가 흘리는 눈물이 좋았다. '바보'라는 그의 별명도 좋았다. '개혁'을 원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나도 있었다. 고등학생마저 개혁을 원하던 시절이었나보다. 아니면 나 혼자 개혁을 원했나보다.

그는 스스로 "미국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면서 여느 대통령과는 다른 그만의 자주성을 내세웠다. 인권 변호사 시절 벌어진 한 노사분규현장에서 그는 노동자들을 변호하느라 고난의 세월을 겪었다고 얘기했다(뒷 이야기를 들으니 이야기의 본질 안에는 또 다른 분규가 있었고 그는 또 다른 노동자들을 외면했다). 국회에서 열린 5공화국 청문회. 당시 그는 칼 같은 언변과 5공 인사에 대한 막힘없는 질타로 전국민의 스타가 된다. 그는 호기로워 보였고 그의 호기는 정의로워 보이기도 했다.

그의 당선 이후 몇년이 지나 그는 변했다. 나는 그가 변했는지 본래 그러했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기대하고 바라던 그런 대통령의 모습이 그에겐 없었다. 미국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그의 배짱은 명분없는 전쟁에 동원되는 우리 군인들이 깼다. 노사 분규 현장과 숱한 쟁의 현장에서 보여준 인권변호사로서 그의 모습은 약자를 싸안고 다독이는 듯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졌으나 그게 아니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웬 기업 연구소의 말을 빌려와 사람들의 삶에 강제로 적용시키려 하기 시작하더니 종내에 그는 돈이 사람을 무릎꿇리는 나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울었다. 그의 변모에 울었고 그의 독불에 울었다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상징되는 미국 종속적 자본주의에 우리나라는 편입되었다. 이는 그들의 독선이 빚어낸 산출물이다. 국민 절반의 여론이 미루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와중에도 그는 이것이 분명 옳다며 박차를 가했다. 그의 결정에 국민들은 없었다).

위 글을 적은 선배는 이제 신문사를 떠나고 없다. 내가 올해 들어왔다. 위 글이 적히고 5년. 선배는 5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지역감정,재벌,민주당'의 도움을 받지 않고 국민들의 성원과 지지로 당선돼 개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던 그가 해온 지난 5년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국민들의 도움을 받은 만큼 되갚아야 된다는 지난 선배의 말을 선배는 어떻게 평가할까. 술을 마시고 글을 적고 다시 술을 마실 정도로 좋았을 그의 당선 이후 5년. 선배는 아직도 그의 통치를 기뻐해 술을 마시고 글을 적고 다시 술을 마시고 있는 걸까.

다시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시기가 왔다. 5년이 지났다. 그는 은혜를 갚지 못한 것 같다. 다시 누군가를 뽑는다면 은혜를 갚는 후보가 되길 빈다. 선배의 선택이 당선에서 기쁜 것이 아니라 퇴임 시기 그가 잘했다고 기뻐해 술을 마시고 글을 적고 다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올해에는 나도 누군가를 선택할 수 있다. 나의 선택도 꼭 그렇게 되길 바란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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