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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밥

일기 2008. 9. 8. 23:34
맑고 더웠다.


  연찬장의 공기는 식기소리와 뒤섞였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먹었다. 음식을 나르는 이들은 바빴다. 참여연대 '후원의 밤'이 열린 8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대연회장에서였다. 숟갈에 그릇이 부딪는 소리와 밥을 먹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소리, 담소가 연찬장을 메웠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그 곳에서 올해 참여연대가 내건 5대 기치를 설명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시민의 구실에 관해 설파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포는 지난날의 실정을 사과했다. 정치권이 잘못해 시민단체가 수고롭고 국민들이 고생한다는 말이 그 골자였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은 밥 먹는 소리에 묻혔다. 사람들의 담소에 '시민의 구실'이 묻혔다. 숟가락과 그릇간 부딪는 소리에 '정치'와 '실정'이 묻혔다. 밥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생활의 보편은 참여연대가 내건 '진보'가 추구해야 할 정의로운 질서였다. 그 단순한 질서 앞에 온갖 고담준론과 미사여구가 묻혔다. 이것은 애처롭지만 합당한 세상의 질서였다.


  지난날 진보의 말들은 성하고 우뚝해 스스로 청청했다. 밥 먹는 일과 동떨어진 진보의 일들은 밥 먹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다. 오늘 연찬장의 만찬은 풍요롭고 단란했으나 준엄하고 매서웠다. 사람들은 밥 먹으며 그것을 몸으로 말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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