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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수입'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27 시민. 그리고 공권력
  2. 2008.06.17 기자는 말한다
  서울의 복판은 연일 시끄럽다. 사람들의 요구는 거세고 공권력은 더 거센 힘으로 사람들의 요구를 가로막고 있다. 대통령은 공권력의 배후에 있다. 서울 복판은 연일 거대한 바둑판이다. 은사님은 "좀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하셨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말하기 쉽지 않고 견디기 어렵다. 광화문과 세종로에선 연일 치열한 요구와 대응이 맞선다.

  물대포의 파괴력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에 알맞다. 시민들은 거센 물줄기를 보면 눈이 돈다. 한 목소리로 외친다. "폭력경찰 물러가라."고 외친다.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아본 적이 있다. 작년 11월 노동자 대회였다. 학보사 기자로 참여한 나는 기자들을 쫓아 닭장차 위로 올라갔다. 그 날은 노동자들의 시위가 거센 날이었다.

  경찰의 살수차는 사람을 안 가렸다. 기자라고 몇 번이나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답이 아닌 답 없는 물대포였다. 오래 맞으면 짜증을 돋우는 데 그만인 물대포를 맞으며 공권력은 과연 누구의 입장에서 정당한 지를 속으로 물었다. 묻는 데 그만 떨어졌고 전경의 방패에 찍히기도 했다. 묵직한 카메라 덕에 연행을 면했다.

  살수차를 마주대한 2008년의 5월, 한국은 끓었다. 여론의 지향이 쏠렸다. 졸속적인 광우병 수입협상 때문이었다. 시민들은 2002년, 2003년, 2004년 그랬듯이 2008년에도 거리로 광장으로 나왔다.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지만 그걸 모른 것은 시민들의 힘을 홀대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제 요구를 관철하지 못해내는 대의제 정치를 거리에서 체감하고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간과한 '시민들로부터의 수렴'을 매섭게 탓하며 거리에서 다시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귀를 닫았다. 경찰은 이제 방패를 수평으로 세워 시민들을 친다. 공권력은 기울었다. 그 기울기를 탓할 수는 없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령하달의 관료문화가 여전한 한국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향성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상부의 상부는 누구인가. 자명하다. 국민이고 시민이다. 주권자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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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말한다

25일 밤. 기자는 대열의 복판에 있었다. 옹벽같이 시민들을 둘러싼 닭장차를 뚫고 시민들은 청계광장에서 청계천을 따라 서울 도심을 돌았다. 시민들은 구호를 외쳤다. 함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기자 귀에는 시민들의 노여움같이 들렸다. 정권에 대한 노여움이었다. 시민들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집회의 양상은 변했다. 이제 시민들은 광장에서 앉았다 일어나 모여 거리 곳곳을 누볐다. 그들의 눌러지지 않을 화가 그들의 발을 밀었다. 거리를 걷는 시민들의 입에선 ‘87년 6월’이 나왔다. 그 때의 기억이 지금 시민들의 발을 밀고 있다.

29일 4시. ‘소통’을 강조하던 정부는 결국 고시를 발표했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하고 미비했다던 대통령이 중국에 나간 새였다. 고시를 발표하는 장관은 연신 머리를 굽실거렸다. 그렇게 죄송한 일을, 국민들의 다수가 반대하는 일을 왜 저지른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날 광장엔, 집회 이후 최고 규모의 시민들이 모였다.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그쳤던 사람들의 말은 ‘하야, 탄핵’등의 말로 바뀌었다. 이날 한 언론은 정부의 고시발표 강행을 두고 ‘국민과의 선전포고 선언’이라고 표현했다. 이 날 광장에선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민들이 불렀다.

87년 6월의 기억이 선연하게 왔다. 87년 6월 29일. 정부의 6.29선언 이후 사람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민주주의를 그네들이 쟁취했음을 상하(相賀)하는 껴안음이었다. 억눌려왔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말들이 봇물 터지던 날이었다. 주권자인 국민이 대표를 제 손으로 뽑는 방식은 정당하지만 새삼스럽지만 귀하고 위대한 것이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제 손으로 이룩했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 것이었다. 민주주의였다.

97년 12월. 한국은 외환위기를 맞았다. 외국 돈이 부족해져서였다. 사람들의 과소비와 무절제가 거기에 한몫했고 기업들의 위험성을 염두해두지 않는 경영이 그것을 거들었고 세계상황에 무지했던 당시의 정부가 그것에 손을 놓았다.

‘단군이후 최대의 환란’이란 말이 나돌았다. 가정이 붕괴되고 거리에서 묵는 사람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노동자를 해고했다. 일이 없어진 그들은 가게를 차렸지만 보름 내에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97년 이후, 삶은 참혹했다. 한국에서 삶의 가치가 ‘돈’으로 일원화되기 시작했다. 문화가 돈벌이가 되고 믿음이 빚이 되는 시절이었다. ‘공무원’과 ‘안정’으로 대표되는 삶의 지향이 대학가를 주무르게 되는 시절이었다. 민주주의의 작동이 거치적거리게 여겨지는 시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돈’이나 ‘출세’, ‘성공’등의 가치들은 다른 가치들을 압도하게 됐다. 일 하는 사람들을 대상화 시켜 그들의 고용이 기업여건에 맞춰 효율성의 논리대로 휘둘려질 수 있음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나라의 산하(山河)가 거래되는 것이 별 문제 없어지게 됐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언론이 돈의 논리에 따라 작동되는 것을 무심상하게 바라보게 됐다.

정부는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정책들을 국민의 뜻이 아니라 국민없는 ‘국익’의 뜻에 따라 추진하기 시작했다. 87년 6월 싸워서 얻었던 민주주의의 가치가 흔들리게 됐다. 처음엔, 대표만 우리 손으로 뽑으면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다라고 생각했다. 여타의 것들은 뽑힌 대표가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 오판이었다. 게다가 그 기본의 원칙마저 무너졌다.

87년의 쟁취라 믿었던 민주주의는 97년 이후 끊임없이 싸움의 복판에 있었고 일순 빼앗겼다. 그리고 이제, 빼앗긴 민주주의를, 온전하지 못했던 민주주의를 다시 찾아와 온전하게 만들려고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섰다. 대의제에 대한 불신이 거듭되고 삶의 본연일 먹을거리에까지 저열한 권력의 촉수가 닿자 국민들은 화가 났다. 지금 거리에선 민주주의가 한창이다. 시공(時空)이 배합된 장관이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배합이다.

기자는 매번 대열의 선두에서 대열을 지켜봤다. 대열의 구호는 일사분란하지 않아 좋았다. 능동적이고 산발적인 구호가 대열 곳곳에서 들렸다. 시민들이 걷다 지쳐 구호가 일순 그치는 그 공백마저도 좋았다. 민주주의 모습 같아서 좋았다. 유모차를 미는 주부들과 군복을 입은 예비군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한 데 모여 거리를 휘젓는 장관을 마주대하려 기자는 거리로 자주 나갔다. 거리에서 그들을 마주대하면, 인간과 시절에 대한 믿음이 몸 안에서 솟는다.

그들이 함성을 내지를 때면 소름이 돋는다. 시민들의 모습은 그 어떠한 은성(殷盛)한 수사로도 묘사하기 어렵다. 기자는 다만 ‘촛불이 번지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란 말밖에 못 적겠다. 그 안에 다 있다. 시민들을 믿는다. 민주주의는 지금 거리에서 한창이다. 기자는 말한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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