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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2.03 사제단이 다시, 광장에 섰다 1
  2. 2009.01.24 23일 서울역 추모제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다시 광장에 섰다. 그들은 시국미사를 집전했다. 용산에서 벌어진 참사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권의 폭주에 제동을 걸려하는 미사였다. 습한 한기가 광장을 메웠고 땅을 적셨다. 사제단이 광장에 섰다.
  사제단은 성이 났다. 미사 중간 한 신부는 아우성을 쳤다. 격앙했다. 그는 참사 피해자 5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외쳤다. 이름 뒤에 '열사'라는 칭호를 붙여 미사는 열사를 위한 추모제 그리고 이명박 정권을 향한 결의와 적의를 다지는 자리로 뒤범벅 됐다. 사제단은 시민과 유족과 더불어 화가 나 있었다.
  작년 촛불 정국에서 시민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기로에서 피폐해진 심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정권은 시민들의 말에 귀를 닫았었다. 시민들의 울분과 비폭력에의 추구가 서로 다른 궤도에서 돌았고 그로 인해 집회의 갈피와 시민들 간 갈등과 혼란이 극지에 처해있을 즈음이었다. 그 때 사제단이 광장에 섰다.
  사제단은 시민들을 쓰다듬었다. 그들의 시국미사는 울화로 달아오른 시민들을 더듬고 포개고 부둥켜 안았다. 판국이 정리됐고 사람들의 요구가 '비폭력'으로 가닥잡혔다. 사제단의 힘이었다.
  오늘, 사제단이 누르지 못한 화와 울분은 시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제단의 시국미사와 진보단체의 시국집회의 모습이 달라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작년 7월에 이어 다시 광장에 섰지만 화난 모습이었다. 그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우리 사제들은 거룩한 분노로 맞서 저항할 것"이라 말했다. 이명박 정권 2년 째. 시국은 시계제로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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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파가 다시 전국에 불어닥친 23일 밤. 서울역 광장에는 사람 여럿이 모였다. 사람들은 추모제를 열었다. 용산에서 벌어진 사태에서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추모제였다. 추모제는 추모제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그악한 정권에 대한 적의를 다지는 자리가 추모제와 같이 열렸다.
  사람들 몇은 오들오들 떨며 서울역 1번 출구 앞을 둘러쌌다. 그들은 정권 반대 구호를 쉼 없이 외쳤다. 역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그들을 쳐다봤다. 함성은 쉼 없었고, 함성은 시선에 개의하지 않았다.
  행사 중앙무대 단상은 많은 사람들이 거쳐갔다. 피해 유족들이 단상에 올랐을 때 군중은 숙연해졌다. 유족이 걸러지지 않은 감정으로 정권 비판을 할 때 군중은 함성으로 비판을 받았다. 지난 여름 '정권 퇴진'이란 구호가 시민들 입에서 회자되었을 때 다른 시민들은 "너무 나갔다"며 토론과 설득을 벌였다. 이 날은 달랐다. 누구 하나 '정권 퇴진'을 "너무 나갔다"하지 않았다. 적층된 사람들의 불만과 울분이 서울역을 메웠다. 사람 여섯이 죽고 며칠이 지난 날이었다.
  여권 실세 정치인은 이번 사태를 보며 "불길한 조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경찰의 진압에 주춤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이날 3000여명의 시민들은 진압을 헤치며 서울역에서 홍대까지 행진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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