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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에 해당되는 글 24건

  1. 2008.12.31 인턴일기2-문정우 국장의 웃음
  2. 2008.12.30 인턴일기1

  문정우 국장은 해학을 머금고 산다. 얼굴은 장승같은데(좀 작은) 주로 너털웃음을 짓는다. 말을 하다 가끔 혀를 내밀기도 하는데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이 발칙한 인턴;;;) 혼자서 까무라친다. 글은 또 어찌나 재밌게 쓰시는 지…

  이제 그는 내 선배가 됐다. 까마득한 선배다. ‘기자님’에서 ‘선배’가 됐다. 인턴 이틀째날, 그와 마주했다. 인턴 여섯과 그. 꽤 어울리는 만남이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습니까?” 대뜸 그가 물었다. 우리는 주저하며 답했다.

  “글 쓰는 게 좋아서요.”, “현장이 좋아서요.”라는 답들이었다.

  “오 마이 갓! 글 쓰는 게 좋다고? 그게 얼마나 지겨운 일인데. 평생 머리 아프고…”

  그가 되물었다. 이어 문정우 국장은 ‘리영희’교수 얘기를 꺼냈다.

  “리영희 교수가 말했다. ‘기자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더라.” 그는 전에 내게도 이런 덕담(문국은 덕담이랬다)을 건넸다. ‘기자하지 마.’라고. 결국 나는 인턴이나마 기자가 돼버렸고 그 역시…

  “리영희 교수가 ‘서울의 봄’ 직후 다시 강의(당시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했다. 강의실엔 학생보다 기자들이 더 많았다. 근데 한국기자는 하나도 없더라. 외신기자만 바글바글했다. 한국의 지성이고 저항(의 상징)이라. 80년이면 박정희가 죽고 나서인데도 (한국기자는)무서워서…”

  문정우 국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회고인지 한숨인지 허탈함인지 피로감인지 분간이 어려운 회고였다.

  “변한 게 없다. 그 때나 지금이나. 2008년(놀랍게도) YTN기자들도 해직되지 않았나. 우리고 그랬고. 쫓겨난 거지, 막말로(웃음).”

  잔인한 그 때의 기억을 그는 간명하게 정리했다.

  자리 말미에, ‘삼성’이 튀어나왔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당시 삼성은 어떤 움직임을 보였나요? <시사IN>은 요즘 삼성기사 안 씁니까?”

  내가 물었다. 뇌관을 건드린 셈이었다. 그는 흥분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답했다.

  “삼성 기사 안 쓴다. 쓰면 뭘 하나. 면죄부 쓰기 싫다. 아니, 이런 나라가 세상에 어딨나. 검찰을 비롯해 공정위, 금감위 이런 자본주의 감시의 틀이 전부 썩었다. 또 다른 감시 축인 언론도 썩긴 마찬가지다."

  그는 삼성의 저열한 대응도 말해줬다.

  “(삼성에서)나보고 그랬다. 기사만 빼주면 모든 것 다 해준다고. 진담인 듯싶더라. 나 이래봬도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사람이다.”
 
문정우 국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찼다. 그는 삼성 관계자에게,  “내가 인쇄소 가서 기사 빼랴? 그러면 우리 기자들 또 거리로 나간다. 해주고 싶어도 못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질긴 설득은 이 말 뒤에 그쳤다. 삼성 관계자는 물러갔고, 언론과 삼성의 묵계인 일보금지(一報禁止. 삼성비판 기사는 어떤 회사라도 먼저 쓰지 않겠다는 암묵적 합의)는 <시사IN>에서 깨졌다. 문국의 해학 뒤엔 삼엄함이 있었다. 그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자인생은 그랬을 듯싶다. 그는 늘 웃지만 그 웃음은 풀어진 웃음은 아니었고 긴장과 경계와 원칙과 책임과 공신이 단단히 뭉쳐진 웃음이었다.

그는 교육 내내 웃음을 머금고 말을 했다. 나는 그의 말은 받아 적었지만 그의 웃음은 적지 못했다. 글로 적힐 웃음이 아니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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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일기는 내가 쓴다. 그렇게 돼버렸다. 양해 바란다. 술 먹는 중에 문자 왔다. 고재열 선배의 문자였다.
  "첫 일기는 네가 써라."란 내용이었다. 고재열의 문자는 매번 반갑고,버겁다. 나는 쓴다.
  '선배' 그 어색한 호칭
  어색했다. 나는 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솔직히 그렇다. 난 그들과 구면이다. '기자님'하고 따라 다녔고, 들러 붙었다. 이제는, 어제부터는(어제 일기를 오늘 쓴다. 게으른 인턴을 양해 바란다) '선배'다. 내 사수(?) 변진경 선배가 일렀다.
  "기자님이 아니라, 선배! 철저해라. 이게 어디서..."
  샌드페블즈는 '나 어떡해'했다. 나는 '나 어색해'다. 어색해도 할 수 없단다. 이 바닥 호칭이 이렇단다(언제, 선배란 말이 지니는 다면적 어감을 쓰는 날이 올 것 같다).
  남국의 수다
  남문희 국장과는 점심을 먹었다. 서대문의 '아지오'에서였다. 우리는 포식을 했고 남문희 국장은 맥주만 홀짝였다. 그나마 그 홀짝인 맥주의 열량과 취기마저도 그는 우리에게 쏟았다.
  "기자는, 저널리즘은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돼. 의견을 가지고 '저 자식이 개아들이다'하는 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나는 기자하면서 이건 지키려고 했다."
  그의 말은 대략 이랬다. 남문희 국장은 잃어버린 '주간지의 문법'을 그리워하는 듯했다.
  "나는 <시사저널>창간 멤버다. 시사주간지 영역이 척박한 한국에서 <시사저널>은 대단한 매체였다. 거기에 20여년을 쏟았다 (중략)시사주간지, 위클리의 문법이 분명 있다. 국장을 얼마 전에 달았다. 그 문법을 부활시키고 싶다. 내 후배들은 그 문법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다시 만들거다."
  "국장 달고 기사도 못 쓴다. '편집국장의 편지'도 못 쓴다. 정신 없다. 내가 일선에서 뛰면 데스크는 누가 보나? 난 뒤보는 국장 역할인 것 같다."
  이날 남문희 국장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이 말들을 다 못 받아 적었다. 그가 말할 때 하늘에선 눈이 왔다. 나는 내리는 눈을 몰래, 쳐다봤다.
  민완하다 민완해. 주진우!
  주진우 기자는 민완하다. 이 말을 주로 들었고 어제 확인했다. 그는 온갖 취재 뒷얘기와 일화들을 우리에게 전했다. 가히, 듣기에 대단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다. 여러분과 좋게 지내고 싶다. 노력해다오." 말머리에서 그는 말했다. 우리 두 달을 챙기는 챙기는 기자가 그다. 묵직한 신뢰감이 들었다.
  두 달 여정이 시작되다
 
두 달 생활이 시작됐다. 이숙이 선배는 "잘 해라"고 했다.  변진경 선배는 "겉멋 부리지 마라"고 했다. 차형석 선배('선배'란 말이 제일 어색하다;;)는 왜 이런(?)일을 하냐고 했다. 선배들의 말이 빗발쳐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 사이로 내달리기로 했다. 내 곁엔 다섯명의 동기들이 있다. 그들과을지로 '던킨 도너츠'에서 의지를 다졌다. 굽은 몸을 새로 피기로 했다. 그러기로 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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