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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9.08 진보와 밥
  2. 2008.06.28 여의치 않다

진보와 밥

일기 2008. 9. 8. 23:34
맑고 더웠다.


  연찬장의 공기는 식기소리와 뒤섞였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먹었다. 음식을 나르는 이들은 바빴다. 참여연대 '후원의 밤'이 열린 8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 대연회장에서였다. 숟갈에 그릇이 부딪는 소리와 밥을 먹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말소리, 담소가 연찬장을 메웠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그 곳에서 올해 참여연대가 내건 5대 기치를 설명했다. 소설가 조정래씨는 시민의 구실에 관해 설파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포는 지난날의 실정을 사과했다. 정치권이 잘못해 시민단체가 수고롭고 국민들이 고생한다는 말이 그 골자였다.


   그러나 이 모든 말은 밥 먹는 소리에 묻혔다. 사람들의 담소에 '시민의 구실'이 묻혔다. 숟가락과 그릇간 부딪는 소리에 '정치'와 '실정'이 묻혔다. 밥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생활의 보편은 참여연대가 내건 '진보'가 추구해야 할 정의로운 질서였다. 그 단순한 질서 앞에 온갖 고담준론과 미사여구가 묻혔다. 이것은 애처롭지만 합당한 세상의 질서였다.


  지난날 진보의 말들은 성하고 우뚝해 스스로 청청했다. 밥 먹는 일과 동떨어진 진보의 일들은 밥 먹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다. 오늘 연찬장의 만찬은 풍요롭고 단란했으나 준엄하고 매서웠다. 사람들은 밥 먹으며 그것을 몸으로 말했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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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진은 화났다. 나와의 문자에서 그는 "동지 두 명이 끌려갔다.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전부터 눈에 뵈는 게 없이 달려들었지만 이번 문자에 실린 무게는 여느 날과 달랐다. 어제 조진은 닭장차 위에 올라가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아 차 위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괜찮냐고 했더니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경찰의 천막 철거에 거세게 항의하던 그의 '다함께' 동지들이 연행돼갔다.

  참여연대에 압수수색 영장이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압수수색 영장이 떨어진 것이다. 오늘 내일이면 장소를 마련한 참여연대에 경찰들이 들이닥친다. 현재 간사들이 당직 조를 짜 통인동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오늘 연행에서 풀려나온 동엽이 형은 풀려나자 마자 다시 광장으로 갔다. 머리에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그제, 밧줄을 잡았다. 밧줄을 당기는 사람들의 인력은 상당해서 인력에 거스르거나 흐름에 못 기대면 허리와 어깨가 나갈 수 있겠다 싶었다. 밧줄을 6번 정도 잡아 당겼다 놓았는데 2시간이 갔다. 버스에 칭칭 동여맨 쇠밧줄에 사람들의 합력은 여의치않았다. 

  물대포는 이제 일상이 됐다. 경찰은 집회현장에 매번 물대포를 끌고 나온다. 며칠 전 대통령의 발언을 문화부와 법무부 장관이 받고, 경찰 총수가 실천해 생긴 일이다. 오늘은 경찰 측에서 "불법 폭력 시위를 엄단하겠다."란 말이 나왔다. 소화기에 체루액을 섞는다는 둥 형광액을 섞어 채증을 할 거라는 둥의 말이 나돌았다. 오늘 경찰의 저지선은 청계광장까지 였다.

  민생팀 안진걸 팀장의 연행과정이 오마이뉴스에 올랐다. 사진 속 그의 표정이 위태로웠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안 팀장은 그를 포박하는 경찰들에게 "살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하는 자신이 비굴했다고 했다. 살 길은 맞딱드리는 비굴함을 극복하는 곳에 자리잡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여의치 않았다.

  이명박의 강경진압 입장이 먹혀들 것이란 생각은 괴롭지만 그럴 듯하게 내게 왔다. 촛불의 비폭력성을 주장하는 자는 이제 광장에서 배척받는다. 대책회의는 매번 고민고민해 대책을 제시하지만 매번 제시한 대책만큼의 욕을 먹는다. 시민들의 화가 조직되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고 화염병이 재현되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는 소리도 나온다. 광장에서는 과거 보도블럭을 깨 투석했다는 옛 투사들의 한담이 들린다. '비폭력'을 신봉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경찰의 방패와 곤봉은 이제 시민들에 대한 개별적 인지를 거부하고 한데로 몰아 타도되어야 할 것으로 범주화하는 듯하다. 여의치 않다.

Posted by 이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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